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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개인일기

일제강점기 시절 박모씨가 1922년부터 1944년까지 쓴 생활일기 2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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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속 한 대목: 일본군과 위안소 관리인

버마국 아캬브의 인도 국경이 가까운 곳에서 신년을 맞이하였다. 만리타국 타향의 일선진중의 신년이나마 처남, 고 아라이 ○환 군, 그 외 위안부 19명이 모두 한 집에 있어 즐거이 신년을 축하하였다. 1월 16일 나는 아캬브를 떠나 랑군으로 향하였다. 아랏칸 산 180킬로미터나 되는 고산준령 산악 지대를 부대 자동차로 넘어 작년 버마에서 첫 위안업을 경영하고 있던 프롬을 지나 랑군에 도착한 것은 1월 23일 밤이었다. 랑군회관 오오야마 호일 씨의 처소에 유숙하다. 3월 말경 페구에 고향 친구 카나가와 씨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카나가와 씨의 처소에 가서 또 1개월가량 있었다. 그로부터 남에게 신세만 지는 몸이 되었다. (1943년 일기의 마지막 후기)
1944년 2월 11일 금요일. 비오고 흐림. 아침 7시에 기상하였다. 오늘은 기원절이며 또 오늘부터 1주일을 싱가포르 함락 2주년 기념 주간으로 정하여 여러 가지 행사가 있다. 첫 새벽 일찍 궁성을 향하여 요배하고 황군의 무운장구와 전몰장병의 명복과 필승을 기원하였다. 니시하라 군의 부인은 종일 출발 준비로 분망하였다.
1944년 4월 3일 월요일. 맑고 밤에 비. 싱가포르 켄힐로드 88호의 키쿠수이 클럽에서 일어나 보이를 데리고 시장에 갔다 왔다. 클럽조합 사무소를 오늘 남방정(南方亭) 앞으로 이전하였다. 이전 조합 사무소는 통과하는 위안소 부대의 숙사로 사용하게 된다더라. 밤 1시 반까지 월말보고서를 작성하고 취침하였다.
1944년 4월 6일 목요일. 맑음. 싱가포르 켄힐로드 88호의 키쿠수이 클럽에서 일어나 자동차로 보이를 데리고 시장에 가서 장을 보아 왔다. 생선조합에 가니 재작년 위안대가 부산에서 출발할 때 제4차 위안단의 단장으로 온 츠무라(津村) 씨가 생선조합에 요원으로 있더라. 그간의 사정을 간단히 이야기하고 인사하였다. 정박장에 잠깐 나가 위안부 오소메와 쥰코 및 쿄우에이 클럽의 토미코를 전송하고 돌아왔다. 밤 2시경까지 쵸우바일을 보다가 잤다.
1944년 10월 4일 수요일. 맑음. 싱가포르 시 켄힐로드 88호의 키쿠수이 클럽에서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전 후지 클럽 주인 카야마 씨와 육군병원에 가서 내지 귀환에 필요한 진단서를 얻기 위하여 군의에게 진찰한 결과를 받으려 하였더니, 오는 7일에 한 번 더 와서 진단을 받고 <결과를> 받아가라 하기에 그냥 돌아왔다. 남명장(南明莊)에서 경방대(警防隊) 제4중대의 점호가 있다. 카나자와 정웅 및 키노시타 두 사람은 동아상회 사무소에 가서 직공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다.
1944년 10월 15일 일요일. 맑은 후 천둥과 비. 싱가포르 시 켄힐로드 88호의 키쿠수이 클럽에서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니시하라 씨의 권유로 부득이하게 카야마 형락 씨와 공영극장에 가서 영화 구경을 하고 돌아왔다. 경방대 회의가 있어서 클럽조합 사무소에 집합하였다. 이번 경방대는 토나리구미 단위로 조직이 개편되어, 제5중대 제2소대 제1분대가 이 클럽 구역과 기타 구역을 조금 포괄하고 있다. 밤 1시경까지 쵸우바 사무를 보다가 잤다.
※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안병직 번역•해제, 2013)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