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자료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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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난고

이재(頥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이 1738년부터 1791년까지 53년간 쓴 생활일기 47책.

목록


순번 자료명 수록시기 책수 비고
1 이재난고 1 1738∼1751 1
2 이재난고 2 1751∼1759 1
3 이재난고 3 1759∼1764 1
4 이재난고 4 1764∼1765 1
5 이재난고 5 1765∼1766 1
6 이재난고 6 1766 1
7 이재난고 7 1766∼1767 1
8 이재난고 8 1767 1
9 이재난고 9 1767∼1768 1
10 이재난고 10 1768 1
11 이재난고 11 1768∼1769 1
12 이재난고 12 1769 1
13 이재난고 13 1769 1
14 이재난고 14 1770 1
15 이재난고 15 1770 1
16 이재난고 16 1770∼1771 1
17 이재난고 17 1771 1
18 이재난고 18 1771 1
19 이재난고 19 1771∼1774 1
20 이재난고 20 1774∼1775 1
21 이재난고 21 1776 1
22 이재난고 22 1776 1
23 이재난고 23 1777 1
24 이재난고 24 1778 1
25 이재난고 25 1778 1
26 이재난고 26 1778 1
27 이재난고 27 1778∼1779 1
28 이재난고 28 1779 1
29 이재난고 29 1779 1
30 이재난고 30 1779 1
31 이재난고 31 1779 1
32 이재난고 32 1779∼1780 1
33 이재난고 33 1780 1
34 이재난고 34 1781∼1782 1
35 이재난고 35 1783∼1784 1
36 이재난고 36 1785 1
37 이재난고 37 1786 1
38 이재난고 38 1786 1
39 이재난고 39 1786 1
40 이재난고 40 1786∼1787 1
41 이재난고 41 1787∼1788 1
42 이재난고 42 1788 1
43 이재난고 43 1789 1
44 이재난고 44 1789 1
45 이재난고 45 1790 1
46 이재난고 46 1790∼1791 1
47 이재난고 47 1791 1

일기 속 한 대목: 기생의 죽음

또한 잠시 후에 이생(李生)이 비로소 가기(歌妓)인 운아(雲娥)와 동기(童妓)인 행단(杏丹)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잠시 후에 금기(琴妓)인 점아(點兒)와 노기(老妓)인 춘향(春香)•초심(初心)이 연이어 도착하였는데 가기(歌妓)인 행아(杏兒)는 오지 않았다. 이생이 정군(鄭君)에게 “이 아이는 항상 불러도 오지 않으니 지금 닦달하지 않을 수 없네.”라 말하고는 통인(通引) 윤갑(允甲)을 보내 재촉하게 하였다. 그 아이가 정자 아래에 도달하자 정군은 웃으며 “늦게 오면 죄가 있는 법이니 잡아와야겠네.”라 말하였고 관노(官奴) 윤팽(允彭)이 잡아 왔다. 이생이 다시 웃으며 “어쩔 수 없이 볼기를 치는 벌을 내려야지.”라 말하자, 나는 “어찌 볼기를 칠 것인가? 타이르면 될 것을.”이라 말하였다. 정군이 웃으며 이생에게 “소나무 가지에 두 손을 칡덩굴로 묶어 경미한 죄를 보이면 될 것이네.”라 말하였다. 살펴보니 소나무는 바로 정자 동북쪽 벼랑 위에 있었는데 몹시도 아찔하였다. 이에 “소나무 아래가 너무 위태롭다네.”라 말하였다. 이생은 결국 윤팽(允彭)에게 명하여 정자 위로 잡아와 두 손을 낮은 들보에 묶고는 조롱하듯 웃었다. 얼마 후 나는 정군을 돌아보며 “한 사람이 모퉁이를 향하니 좌중의 모든 사람이 그 때문에 즐겁지 않다네. 지금 저들은 거문고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데 저 아이는 홀로 벌을 받고 있으니 이제 그만 용서하게나.”라 말하였다. 마침내 윤팽(允彭)에게 그녀를 풀어주라고 명하고는 저들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 후에 소나무 아래로 나아갔을 때 나는 홀연 불안한 마음이 들어 “저 아이가 저 곳으로 간 것은 어째서인가?”라 말하였다. 이생은 “끌고 오면 될 것이네.”라 말하였고, 기녀들은 한 목소리로 “응당 곧 돌아올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녀의 동생인 행단(杏丹)은 뒤쫓아 갔고, 잠시 후 그녀가 민충사(愍忠祠) 동쪽 낙화암(落花岩)의 서남쪽 벼랑에서 비스듬히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화들짝 놀라 “저 아이가 왜 저러는가?”라 말하자 좌중이 모두 크게 놀라며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그녀의 치마가 나뭇가지에 걸리더니 홀연 몸을 뒤집으며 강물로 떨어졌다. 벼랑의 높이는 수백 자나 되었고 강물 또한 상당히 불어 있었다. 나는 좌중의 사람들에게 “도무지 차마 눈을 뜨고 보지 못할 모습이오. 오늘 이곳에 온 것이 정말로 후회스럽소.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소.”라 말하고는, 마침내 돌아오며 윤맹옥(尹孟玉) 형제의 집에 들렀다. 그리고 오생(吳生)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평근당(平近堂)에 들르니 정령(鄭令) 부자와 신생(辛生), 이생(李生)이 이미 돌아간 뒤였다. 듣건대 행아(杏兒)는 월중(越中)에서 빼어난 용모로 명성이 자자했으니 저들 기녀 중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그런데 지금 한바탕 잔악한 희롱을 견디지 못하고 갑작스레 익사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이와 같다면 충신과 열녀가 되는 것이 무엇이 어려운 일이랴! 그녀는 진실로 편협하고 미련하여 말할 만한 가치도 없으나 목격한 것이 너무도 놀랍기에 기록하는 바이다. (영조 43년 6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