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맛질의 함양박씨가는 처가 甘泉文氏家를 따라 금당실로 입향한 朴從麟(1496~1553)의 후손들이다. 박종린의 차자 朴芝(?~1593)의 5세손 朴世柱(1652~1727)가 맛질에 살던 안동권씨의 사위가 되면서 이곳에 정착하였다. 맛질 박씨가 일기자료는 9세손 朴漢光(1770~1834)의 장자 朴顯寧(1794~1878)계와 차자 朴得寧(1808~1886)계 인물들이 대대로 작성한 것이다. 장자계열의 일기, 그 방계, 차자계열의 일기가 전하므로 편의상 大宅, 大宅傍系, 小宅으로 구분하였다.
대택방계의 일기는 박현령의 장손 朴義哲(1839~1908)의 동생 朴義鏞(1845~1871)의 맏아들 朴祖洙(1868~1942)에 의해 시작되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박조수는 백부인 박의철의 독자 朴尋洙(1869~1933)와 형제처럼 자랐다. 박의철이 연로한 후에는 家務를 대신 담당하였다. 반면 장자 박심수는 안심하고 공부에 전력을 다할 수 있었다.
박의철과 박심수에 의해 작성된 일기가 지출 기록을 중심으로 하는 가계출납부 성격을 갖는 반면 박조수의 일기는 생활사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간간히 시문을 적어놓기도 하였다. 1897년부터 사망하기 직전인 1941년까지 9책 분량의 일기가 전하다. 그의 사망으로 일기는 그 맏아들 朴榮普(1888~1952)에 의해 이어졌다. 2책 분량이 남아있었으나, 1947~1950년 일기는 현전하지 않는다. 다만 일실 전에 복사본이 연구자들에게 전해져 정서본 간행에는 전량이 수록되었다.
박조수 저, 박정희 편, 『文溪文集』, 평화보문사, 1988.
함양박씨치암공파세보편찬위원회, 『함양박씨치암공파세보』, 대보사, 2006.
박성수 역해, 『渚上日月』 상ㆍ하, 서울신문사, 1993.
안병직ㆍ이영훈 편저, 『맛질의 농민들』, 일조각, 2001.
이영훈, 「예천군 용문면 대저리 박씨가 고문헌 해제」, 『예천 맛질 朴氏家 日記』 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박인호, 「예천 함양 박씨 동원공파 고문헌의 성격과 내용」, 『조선사연구』 19, 조선사연구회,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