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책(民訴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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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일기
· 내용분류 정치/행정-조직/운영-일기
· 사부분류 사부-정서류-일기
· 시대분류 조선시대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생몰년 신분
박시순(朴始淳) 1848~1907 작성자

형태사항

· 크기(cm) 30.0 X 19.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3
· 재질 종이
· 표기문자 한자

비고

간행사항:『한말 관인 박시순일기』(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1999)
번역문 출전 : 『국역 구한말 郡守 朴始淳 日記: 운불일기, 민소책, 관지책』(임실문화원 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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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박시순이 임실군수 재직 시절인 고종 32년(1895) 9월 1일부터 광무 1년(1897) 2월 29일 사이의 임실군 민원 처결 기록을 초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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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朴始淳이 임실군수 재직 시절인 고종 32년(1895) 9월 1일부터 광무 1년(1897) 2월 29일 사이의 임실군 민장처결 기록을 초록한 책
· 표제民訴冊
· 내제
· 판심제
· 서근제
본 자료는 박시순(1848∼1907)이 임실군수에 재직 중이던 고종 32년(1895) 9월 1일부터 광무 1년(1897) 2월 29일 사이 임실군에서 처결한 民狀을 초록한 책이다. “民訴冊”이라고 표제를 달고 있으나, “無冤錄”, “解寃錄”, “天水篇”이라는 題名도 뒤표지나 앞표지 혹은 내면에 자주 보인다. 民訴는 백성들이 올린 訴狀을 말하며, 山訟이나 債訟이 주를 이루고 조세와 잡역의 감면, 소작권 시비, 匪徒 문제, 아전의 임금 체불 문제도 자주 등장하는 민원이었다. 일자별로 소장을 요약한 후 이어 처분 내용을 기록해 두었다. 박시순 후손가에는 임실군수 시절 민장을 철해둔 대장 1부도 전하는 데, 이 〈民狀綴〉이 관인을 찍은 원본 대장이라면, 본 〈민소책〉은 초록본이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자료로 〈公言聽理〉 2책도 남아있다. 이는 〈민소책〉 1∼3과 4∼6책을 정서한 것이다. 빠르게 필사하여 수정이 많은 본 자료에 비해 〈공언청리〉는 해정한 글씨체로 정서한 후 튼튼하게 장정한 것이다. 담당 아전들이 원본대장을 정리한 후 초록본과 정서본을 작성해 두었고, 이를 군정의 참고자료로 사용한 것이다. 체직 후에도 가지고 온 탓에 이 자료들 모두가 박시순 후손가에서 가전되었다.
면천군수였던 박시순이 임실군수에 임명된 것은 고종 32년(1895) 6월 18일의 일이었다. 그의 일기에서는 6월 20일로 기록하고 있다. 신임 면천군수가 도착한 것은 7월 10일이었고, 21일에야 그는 새 부임지인 임실로 출발하였다. 칠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임지에 도착한 것은 7월 27일이었다. 〈공언청리〉의 민원은 7월 29일부터 시작된다. 현재 남아있는 〈민소책〉은 9월 1일부터이므로 약 한 달분의 민소책이 누락된 것을 알 수 있다. 〈민소책〉 1의 뒤표지에 “無冤錄 卷之參”이라고 기록된 것은 그런 까닭이다. 중간 중간에도 누락이 있어, 현전하는 13책의 마지막 권차는 27권이다. 〈승정원일기〉의 다음 체직기록이 광무 1년(1897) 10월 12일임을 감안하면 현전하지 않는 〈민소책〉은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박시순은 1879년(고종16) 문과에 급제하여 서학교수, 우통례, 우승지, 면천군수, 임실군수, 장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재직 중에 남긴 관직일기 뿐만 아니라 민장치부류인 詞訟錄, 民訴冊, 공문모음집인 官旨冊, 郡報, 郡甘 그리고 유배일기 등 다양한 일기류와 공문서모음집을 남겼다. 현재 총 12종 30책이 전한다.

참고문헌

〈승정원일기〉
정순우•김학수, 「한말 관인 박시순일기의 내용과 성격」,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말 관인 박시순일기』, 1999.
김학수, 「한말 관인 박시순의 일기의 현황과 내용」, 『한말 관인 박시순일기』 2, 2003.

집필자

권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