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후(朴慶後) 환해부침(宦海浮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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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일기
· 내용분류 개인-생활-일기
· 사부분류 사부-정서류-일기
· 시대분류 조선시대

기관분류기호

· 마이크로필름 MF35-8154∼8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생몰년 신분
박경후(朴慶後) 1644~1706 작성자

형태사항

· 크기(cm) 28.0 X 16.7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
· 재질 종이
· 표기문자 한자

비고

간행사항: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고문서집성 45 -부여 은산 함양박씨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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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박경후가 1675년부터 1705년까지 쓴 간략한 사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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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朴慶後가 1675년부터 1705년 간 쓴 간략한 사환일기
· 표제宦海浮沈
· 내제
· 판심제
· 서근제
본 자료 〈宦海浮沈〉은 朴慶後(1644∼1706)의 사환일기로, 증광문과에 합격하던 숙종 1년(1675) 10월 28일부터 숙종 31년(1705) 10월까지의 일기이다. 宦海는 官界를 의미하며, 浮沈은 仕宦 과정에서의 영욕을 비유한 말이다. 시기적으로는 약 30년에 해당하지만 외직에서의 기록은 없고 조정에서 왕을 시종하면서 보고 들은 내용이나 자신이 처리한 정무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 분량이 많지 않다. 1책 40면의 간략한 내용이다. 중간 중간에 수정, 가필한 흔적이 있고, 먹으로 지운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고본임을 알 수 있다. 명필로 이름이 있었던 저자의 친필 手稿本이다. 咸陽朴氏 문중에서 출간한 『歸翁文集』에도 수록되어 있다.
박경후는 1669년(현종10)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숙종의 즉위를 축하하는 증광문과에서 급제하여 병조참판, 황해•전라•경기의 3도 감사를 지내고 1682년(숙종8)에는 尹趾完•李彦綱과 더불어 通信使(從事官)로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다. 숙종초기 남인정권의 주요 당국자의 한 사람이었으며,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내직에 있을 때는 주로 사헌부•사간원•홍문관 등 3사의 직책을 수행하였다.
박경후가 정치적인 현달을 구가하는 사이 청송심씨(沈檀系), 원주김씨(金德遠系), 전주이씨(李義徵系)와 같은 당대 남인의 명가들과 통혼이 이루어져 함양박씨가의 사회적 입지도 크게 강화되었다. 그러나 1694년 갑술환국으로 정계에서 몰락한 남인들이 점차 서울에서 벗어나 경기도 일원으로 분산되는 경향과 궤를 같이하여 박씨가도 박경후의 손자 대에 이천으로 이주하였다. 함양박씨 九堂公派는 파조 朴世榮(1508∼1552)의 고조 朴習(1367∼1418)이 태종의 동방으로 서울에 정착한 이래 대대로 서울에서 사환에 종사해 왔으므로 이때의 이주는 약 400년 만의 거주지 변동이라 할 수 있다. 박씨가가 다시 이천을 떠나 지금의 부여군 은산면에 정착하게 된 것은 1905년경의 일이다. 박경후의 8세손 朴東翼(1868∼1931)의 생부 朴始淳(1848∼1907)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 당시 부여에는 박경후의 아우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었으므로 부여 이거의 배경에는 이러한 족적 기반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한 가문의 역사로 인해 박경후의 〈환해부침〉은 박시순의 관직일기, 유배일기와 함께 부여의 함양박씨가에서 가전되어온 것이다.

참고문헌

정순우•김학수, 「한말 관인 박시순일기의 내용과 성격」,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말 관인 박시순일기』, 1999.
안승준•김학수, 「夫餘 恩山 咸陽朴氏의 家系와 古文書」, 『고문서집성 45: 부여 은산 함양박씨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김학수, 「한말 관인 박시순의 일기의 현황과 내용」, 『한말 관인 박시순일기』 2, 2003.

집필자

권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