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재일기(默齋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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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일기
· 내용분류 개인-생활-일기
· 사부분류 사부-정서류-일기
· 시대분류 조선시대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생몰년 신분
작성자 이문건(李文楗) 1494~1567

형태사항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0책
· 재질 종이
· 표기문자 한자

비고

간행사항:국사편찬위원회 편, 『默齋日記』 上ㆍ下, 한국사료총서 41, 1998.
원문 및 번역문 출전:정긍식·김대흥·문숙자·방범석·이선희·이성임·이숙인·정성학,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 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최종 결과보고서(한국학진흥사업단 한국학분야 토대연구지원 분야),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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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묵재 이문건이 1535년부터 1567년까지 기록한 약 20년간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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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묵재 이문건이 1535년부터 1567년까지 기록한 약 20년간의 일기.
· 표제
· 내제
· 판심제
· 서근제
묵재 이문건이 42세 때인 1535년(중종 30)부터 시작하여 74세로 죽기 수개월 전인 1567년(명종 22)까지의 일상을 기록하여 남긴 일기이다. 일기를 쓴 기간은 총 31년분이 되어야 하지만, 중간에 缺落된 부분이 있어 현전하는 10책의 수록 시기는 총 17년 8개월분이다. 공간적으로는 서울에서부터 서울 근교, 그리고 유배지인 경상도 성주와 처가인 충청도 괴산 등 도시과 시골, 읍내와 농촌의 실정이 두루 묘사되어 있다.
제1책은 1535년 11월 1일부터 1537년 6월 3일까지 1년 7개월분이다. 이 시기는 묵재가 어머니의 喪을 당하여 시묘살이하는 기간과 새로 司諫院 正言에 임명되어 중앙의 官人으로 활약하는 시기이다. 이후 1537년 6월 4일부터 1544년 말까지 缺落되어 있다.
제2책은 1545년 1월 1일부터 4월 23일까지와 동년 9월 6일부터 1546년 1월 29일까지 약 9개월분이다. 중간부분인 9월 6일부터 12월 29일까지는 [政院日記]로 기록하였다고 하였으나 [정원일기]는 현재 亡失되었다. 여기에는 仁宗의 國喪을 당하여 殯殿都監의 郞廳으로 매일 노심초사하며 일을 보는 과정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고, 국상을 마치고 承政院 同副承旨로 임명될 때까지의 일기이다. 동부승지로서의 일기는 따로 [정원일기]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여기에는 누락되어 있다. 乙巳士禍가 일어나 동부승지의 직에서 파직되면서 다시 일기는 시작되었다. 을사사화가 전개되는 과정과 자신이 그에 연루되어 星州로 유배되고, 성주에서 새롭게 정착해 가는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제3책에서 제10책까지는 모두 성주에서의 유배 생활에 관한 기록이다. 그 중에서 3책에서 9책까지는 평상적으로 매일매일 썼던 일기 그대로이지만 제10책은 1563년 1월 1일부터 1567년 2월 16일까지 3년 2개월분의 일기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본 일기를 통해서 중세시기를 살아가는 우리 선조들의 일상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부부간의 갈등, 하층민들의 사랑하는 방식, 主從間의 갈등, 양반들의 風流, 妓生·樂工·匠人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고, 매년 말에 등장하는 作儺戱, 歲畵그리기나 단오·추석 등 歲時名節의 모습, 庚申信仰의 모습 등 지금은 사라진 풍습들도 살펴볼 수 있다.
『東醫寶鑑』이전의 醫學史를 복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질병과 의료에 관한 내용 또한 알 수 있다. 이들은 질병에 대하여 藥處方, 針 등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의료 행위를 통해서 대응하기도 하였지만, 占을 치기도 하고 巫堂을 불러 굿을 하는 등 비합리적인 의료행위가 병합해서 이루어지도 하였다.
중앙 권력을 대표하는 현지의 牧使와 判官, 수시로 지방을 巡行하고 감시하는 監司, 都事, 御史 등의 존재도 기록되어 있다. 더불어 중앙 국가의 권력에 대응하는 사족들의 공동체인 司馬所와 留鄕所를 비롯하여 同姓人들간의 비공식적인 조직체가 생성되고 있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생활의 기초가 되는 물자들에 대한 贈與와 交換의 수준들도 기록되어 있다. 冶匠, 鍮匠, 木手, 筆匠, 畵工 등 다수의 장인들이 나오는데, 이들이 물자를 직접 생산해 가져오면 이문건은 그에 대한 대가를 주기도 하고, 혹은 賦役에 대한 면제 청탁으로 대신하기도 하였다.
본 일기는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밝혀주는 많은 일기자료들 중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다는 점과 당시 사대부의 일상생활이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편, 『默齋日記』 上•下, 한국사료총서 41, 1998.
이복규, 「묵재 이문건의 『默齋日記』에 대하여」, 『국어교육』 97, 한국국어교육연구회, 1998.

집필자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