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5~1738년 어영청습진급착호등록(御營廳習陣及捉虎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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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형식분류 고서-등록
· 내용분류 정치/행정-조직/운영-일기
· 사부분류 사부-정서류-군정(軍政)
· 시대분류 조선시대
· 주제분류 군사훈련
· 기관분류 어영청
· 왕대분류 仁祖, 孝宗, 顯宗, 肅宗, 景宗, 英祖

기관분류기호

· 청구기호 K2-3352
· 마이크로필름 MF35-000564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편자 어영청(御營廳)

형태사항

· 크기(cm) 36.2 X 18.7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不分卷 2冊
· 판식 四周單邊 半郭 26.2 × 18.7cm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印札空冊紙 10行 字數不一定
· 재질 닥종이[楮紙]
· 표기문자 한자
· 인장 1 (御營廳之印)
· 서명

비고

해제 출전: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편, 『장서각한국본해제』 사부13,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5.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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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645년(인조23)에서 1738년(영조14)까지 어영청 군병의 군사 훈련을 위한 동원의 진행 과정과 습진의 내용 및 왕릉 내의 호랑이를 포획하는 일 등을 기록한 책이다.
· 표제御營廳習陣及捉虎謄錄
· 내제
· 판심제
· 서근제御營廳習陣及捉虎謄錄
【서지사항】
御營廳習陣及捉虎謄錄. 御營廳 編. 仁祖 23(1645) - 英祖 14(1738) 寫. 不分卷 2冊. 筆寫本. 線裝 30.3 × 28.0 cm. 半郭 26.2 × 18.7cm
불분권 2冊이다. 표지 서명과 서근제는 ‘御營廳習陣及捉虎謄錄’이다. 斜格卍字 문양이 있는 표지에 서명, 책 수 등이 묵서되었다. 書腦 하단에 ‘共二’이라고 총 책 수가 표시되었다. 서근에는 서명, 왕조, 책 수가 묵서되었으며 제2책의 경우 ‘止’라고 묵서되어 있어 마지막 책임을 알 수 있다. 四周單邊에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인 인찰공책지에 본문의 내용을 필사하였다. 행자수는 10行에 자수가 일정하지 않다. 본문에서는 대두법을 적용하여 광곽 위에 필사하기도 하였다. 내용을 수정하기 위해 백색 첨지를 붙여 묵서한 흔적이 있다. 종이가 오래되어 떨어져 나간 부분을 배접하여 보수했으나 관련 기록은 없다. 본문의 종이는 楮紙이다. 인장은 본문마다 ‘御營廳之印’이 날인되었다.
【체제 및 내용】
1책의 시작 부분은 훼손되어 있고 군병 훈련을 위한 기사의 끝 내용이 가로로 2줄만 있으며 을유 11월 16일 이전 기사부터 시작되고 있다. 2책의 마지막은 무오년 기사로 예조에서 건원릉 등의 능행을 알리는 내용인데, 결락되어 있다. 계사년 기사에서 申埈이 어영대장으로 나오고 있다. 신준이 어영대장으로 임명된 것은 1653년(효종 4) 10월 20일이다. 두 책에 등장하는 어영대장은 柳赫然, 李汝發, 金錫冑, 申汝哲, 尹趾完, 安徹重, 李浣, 金錫衍, 金益勳, 李義徵, 黃徵 등으로 인조 대부터 영조 대까지의 인물들이다. 또한 일기에 기재된 간지의 순서를 따지면 을유년이 1645년(인조 32)이므로 이 책은 인조 대부터 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제1책은 1645년부터 1721년(경종 1) 9월 10일까지이며, 2책은 1721년 9월 26일부터 1738년 9월 19일까지 이다. 두 책은 어영청 군병의 習陣 및 捉虎의 사실을 연대기별로 나열한 일기 형태이다.
어영청 군병이 습진에 동원되던 곳은 慕華館과 露梁津의 모래사장이다. 모화관과 노량진의 모래사장은 조선 말기까지 습진 장소로 이용되었던 곳이며, 어영청 이외의 군문들에서도 늘 사용하던 곳이다. 어영청의 습진 일자는 매월 1일, 11일, 21일, 31일이다. 반면 훈련도감의 습진 일자는 매월 9자가 시작되던 날로서 각 군문이 동일한 습진 장소를 사용하더라도 일자를 달리해서 사용하였다. 그런데 습진이 늘 진행되지는 않았다. 일기에서 자주 언급되던 것이 습진의 연기 내지는 정지였다. 그 이유는 기후와 국가의 의례적 행사가 주를 이루었다. 특히 청국의 사신이 모화관에 오는 일정에서는 습진이 전면 정지되었다. 또한 가물거나 농사의 사정이 나쁜 경우에도 습진이 연기되었다. 특히 이 자료에서는 中宮殿의 痘患 때 습진을 정지하기도 하여 왕실 인물의 건강을 위해 습진이 정지되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제2책에서는 호랑이를 잡는 것이 나타나고 있다. 어영청 군병은 경기도에 출몰하던 호랑이를 잡기 위해 동원되었는데, 주로 健元陵, 貞陵, 光陵, 泰陵, 穆陵, 徽陵, 崇陵, 康陵, 思陵이 위치하던 楊州와 獻陵, 宣陵, 靖陵이 있는 廣州에 파견되었다. 따라서 어영청 군병의 호랑이 사냥도 왕실과 관련된 일에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성 및 가치】
어영청의 군병 동원과 군사 훈련을 왕대별로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도성에 주둔하던 군영병의 활동과 배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 후기 군영군의 운영 실태를 분석할 수 있는 자료로서 조선시대 군제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이외에도 경기 지역의 민간에 출몰하던 호랑이를 잡던 모습을 통해 호랑이의 생태, 호랑이를 잡는 과정에서 발생하던 민폐 등을 살필 수 있다.

참고문헌

육군본부 군사연구소 편, 『한국군사사』 7ㆍ8, 2012.
심승구, 「조선시대 사냥의 추이와 특성 : 講武와 捉虎를 중심으로」, 『역사민속학』 24, 2007.
이태진, 『조선후기의 정치와 군영제 변천』, 한국연구원, 1985.
조계영, 「조선시대 虎患과 국가의 대책 : 「捉虎節目」의 분석」, 『사학연구』 91, 2008.
차문섭, 『조선시대 군사관계연구』, 단국대학교, 1996.
최효식, 「어영청연구」, 『한국사연구』 40, 1983.

집필자

이왕무(李旺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