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9년 종묘서 일기책(宗廟署日記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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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형식분류 고서-일기
· 내용분류 국왕/왕실-의례-등록
· 사부분류 사부-정서류-전례-종묘(宗廟)
· 시대분류 조선시대
· 주제분류 종묘서

기관분류기호

· 청구기호 K2-2184
· 마이크로필름 MF35-004858~MF35-004859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편자 종묘서(宗廟署)

형태사항

· 크기(cm) 30.5~36.7 X 20.3~23
· 판본 사본(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不分卷 10冊
· 판식 無郭, 無絲欄, 行字數不定, 註雙行, 無魚尾
· 재질 닥종이[楮紙]
· 표기문자 한자
· 인장 1 (藏書閣印)

비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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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639~1897년(인조 17~광무 1) 宗廟署에서 日誌 형식으로 기록한 글이다.
· 표제
· 내제
· 판심제
[서지사항]
총 10책의 필사본이다. 표지 서명은 ‘守僕廳日記’이다. 서명은 내용을 근거로 하였다. 본문은 무사란에 필사되었다. 장정은 선장이며 본문 중 일부가 떨어져 나가 있어 배접지를 붙이고 표지도 재장하였다. 재장 시기는 따로 기입되어 있지 않아서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각 책의 앞표지에는 본문을 謄錄한 시기가 필사되어 있다. 10-1~7책의 크기는 36.5×24.0㎝ 으로 동일하지만 10-8~10책의 크기는 각각 조금씩 다르다.
[체제 및 내용]
종묘서는 종묘를 관리하는 곳으로 儀軌를 보관하기도 하였다. 작성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종묘서에 근무한 사람들이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頭註에 그날 있었던 중요한 일을 간략하게 기록하여 열람에 편리하도록 해 놓았다.내용은 몇 가지만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750년(영조 26) 함경도에서 종묘에 薦新하기로 한 생선이 부패하여 다른 道의 封進을 기다리는데 천신할 물건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해당 道臣을 처벌하여 윤허를 받아낸다, 동년 태묘에 三臺路가 있는데 가운데가 神路, 동쪽이 御路, 서쪽이 세자의 行路이다, 영조 27년 종묘 담장이 무너져 慰安祭를 지내고 수리하는 일을 아뢴다, 1752년(영조 28) 元孫의 탄생으로 원손의 定號와 告廟하고 頒敎하는 날짜를 정하다, 1753년(영조 29) 영조와 예조판서 洪鳳漢(1713∼1778)이 園所에 親祭를 지낼 때 太廟의 守僕을 보내기로 결정하다, 효종의 諡號를 加上할 때 친제를 행하다, 1819년(순조 19) 孝明世子(1809∼1830)의 冠禮 날짜를 3월 20일로 정하여 종묘, 영녕전, 景慕宮에 미리 告由한다, 1857년(철종 8) 순조의 廟號와 諡號를 다시 정하고 순조 비 純元王后(1789∼1857)에게 존호를 追上한 뒤 거행할 날짜를 정하다, 1897년(광무 1) 7월 28일 의정부 의정신 沈舜澤(1824∼?)이 建元의 연호를 ‘光武’로 정하다, 동년 8월 13일 음력 8월 20일은 대행왕후[明成皇后]의 두 번째 忌辰으로 別奠을 친행하겠다 등이다.이 중 태묘에 3개의 길이 있는데 신로, 어로, 행로[世子路]라고 명명하였다. 세 길의 명칭을 보여주는 문헌으로 1741년(영조 17)에 편찬된 『宗廟儀軌續錄』(奎 14221) 속 「宗廟全圖」가 있는데 그 밖에는 기록이 잘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본서의 기록은 의미가 없지 않다. 또한 영조가 그 29년에 私親인 淑嬪 崔氏(1670∼1718)에게 시호를 올리고 아울러 ‘毓祥廟’와 ‘昭寧墓’를 ‘毓祥宮’과 ‘昭寧園’으로 승격시켰다. 宮園은 조선 후기 후궁들 가운데 아들이 국왕 혹은 추존된 국왕이 되어 생모의 神位를 봉안한 사당[宮]과 이들의 무덤[園]을 가리킨다. 이러한 궁원 체제의 형성은 영조 대 육상궁과 소령원을 시작으로 본격화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본고에서 園所라 함은 ‘昭寧園’을 가리킨다. 소령원에서 제사를 지낼 때 태묘의 수복을 보낸 데서 영조의 사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다음으로 철종은 순원왕후에 의해 조카 항렬인 헌종을 이어 왕위에 즉위하였다. 철종은 이렇듯 헌종의 大統을 이었지만 동시에 순조의 후사로 들어가, 순조와 순원왕후에 대한 각별한 모습을 보였다. 묘호와 시호를 다시 정하고 존호를 추상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순조는 이때 비로소 ‘純宗’에서 ‘純祖’라는 묘호를 갖게 되었는데 본서에 그러한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그 밖에 고종 대 천자국으로 국체가 변모되면서 연호를 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고종이 1895년(고종 32)에 승하한 明成王后의 국장을 곧바로 치르지 못하고 여전히 魂殿에 모셔져 있는 상태에서 두 번째 기신을 맞는 모습과 그에 대한 고종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혼전은 국왕이나 왕후가 승하한 지 5개월째 되는 달에 山陵에서 장례를 치른 뒤 신주[虞主]를 모시고 돌아와 종묘에 祔廟할 때까지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국왕대별로 사건을 기록하여 보기에 편리한 점이 있다. 다만, 편집할 때 착오가 생겼는지 시기가 순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부분도 있어 아쉬운 점도 발견된다. 전체적으로 간지와 날짜만 확인되어 연대 추정이 쉽지 않지만 중요 사건을 중심으로 연대기 자료와 대조한다면 추정 가능한 부분도 많다. 『승정원일기』와 실록에 같은 내용이 확인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인조 대에서부터 1897년(광무 1)까지 종묘와 관련된 일상적인 일부터 중요하고 굵직한 사건들까지 정리하여, 조선 후기 종묘 전례만이 아니라 왕실 의례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宗廟儀軌續錄』(奎 14221)
강문식·이현진, 『종묘와 사직』, 책과함께, 2011.
이현진, 『조선후기 종묘 전례 연구』, 일지사, 2008.
이현진, 「영·정조대 육상궁의 조성과 운영」, 『震檀學報』 107, 2009.
이현진, 「19세기 조선 왕실의 왕위 계승과 종묘 세실론」, 『韓國思想史學』 32, 2009.
이현진, 「이복원의 宮園儀 편찬 과정」, 『문헌과해석』 56, 2011.
한영우, 『명성황후와 대한제국』, 효형출판, 2001.

집필자

이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