璿源續譜-世宗大王子孫錄(平原大君派, 永應大君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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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형식분류 고서-족보
· 내용분류 사회-가족/친족-족보
· 사부분류 사부-전기류-선원보-속보(續譜)
· 목차분류 왕대-세종-평원대군파(平原大君派), 왕대-세종-영응대군파(永應大君派)

기관분류기호

· 청구기호 K2-1193
· 마이크로필름 MF35-002051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생몰년 신분
편자 이붕증(李鵬增)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璿源續譜 간행 종정원(宗正院)

형태사항

· 크기(cm) 35.3 X 24.2
· 판본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 필서체철활자(筆書體鐵活字)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4권 4책
· 판식 四周單邊 半郭 25.6×18.4㎝, 有界, 世別6段, 10行23字 註雙行, 內向三葉花紋魚尾
· 재질 닥종이[楮紙]
· 표기문자 한자
· 인장 1 (봉모당인(奉謨堂印))

비고

同書 4部(K2-1193B, K2-1193C, K2-1193D)
K2-1193C, K2-1193D 行列式 있음. 平原大君派는 앞 2장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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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표제世宗大王子孫錄(平原大君派, 永膺大君派)
· 내제璿源續譜
· 판심제璿源續譜
· 서근제
종정원에서 편찬한 世宗大王子孫錄으로 세종의 7남인 平原大君과 8남인 永膺大君派의 보첩으로 필기체 철활자본이다. 전체 4책이며 구성은 1권 앞에 범례가 있고 平原大君이 1권, 永膺大君이 4권으로 총5권이며 각각의 자손록이 실려 있다. 6단으로 횡분되어 平原大君은 繼後인 齊安大君의 기록만 있고, 永膺大君의 경우는 親, 庶子孫을 모두 기록하였다. 발간 연대는 범례에 光武 연호를 언급한 점에서 1897년 대한제국 성립 이후 1900-1904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양 大君을 기점으로 470여 년간의 자손을 수록하였다. 내용은 인물명과 생몰 연대, 시호, 묘지, 혼인관계, 본관, 妻父名, 女婿名, 벼슬, 특이한 행적, 行列式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속보는 永膺大君派의 宗孫 參奉 李鵬增, 門長 幼學 李景軾, 都有司 前宣傳官 李遇增, 校正 幼學 李晶增 幼學 李可增, 繕書有司 幼學 李競洙, 幼學 李泰洙, 幼學 李相民 등이 주도하여 발간하였다.
平原大君 琳(1427(세종 9)∼1445(세종 27))의 자는 珍之, 호는 謹行堂이며 昭憲王后 沈氏의 소생이다. 1434년(세종 16) 8세에 평원대군으로 봉군(卒記에는 13세에 봉군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되고, 1437년 宗學에 입학하였으며, 1438년 4월 21일 護軍 洪利用의 딸과 혼인하였다. 이후 학문에 진력하여 詩·禮·『大學衍義』에 숙달되고, 또 書體와 射御에도 능숙하였으나, 1445년 1월 19세의 나이에 홍역으로 죽었다. 시호는 靖德이다. 부인은 江寧府夫人으로 봉해졌고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1474년(성종 5) 10월 18일에 齊安大君 琄(예종의 둘째아들)으로 뒤를 이었다. 1871년(고종 8) 3월 16일 定憲公으로 시호를 추증하였다. 묘지는 廣州 細村面 靈長山 壽進宮洞에 있다.
永膺大君 琰(1434(세종 16)∼1467(세조 13))은 세종의 8남이고, 어머니는 昭憲王后 沈氏이다. 1441년(세종 23) 永興大君에 봉해지고, 1443년에 歷陽大君, 1447년에 永膺大君으로 改封되었다. 처음에 海州 鄭氏 忠敬의 딸과 결혼하였고, 후취로 礪山宋氏 判中樞 復元의 딸을 맞아들였다. 부왕의 총애가 지극하였으며, 1450년 부왕 세종의 죽음도 그의 저택인 동별궁東別宮에서였다. 1463년(세조 9) 『明皇誡鑑』의 가사를 한글로 번역하였고, 글씨와 그림에 능하고 音律에도 통달하였다. 시호는 敬孝이다. 묘지는 楊州 乾川面 郡場里 八谷山에 있다가 1900년(광무 4)에 安山 馬遊面 君子峯 아래로 이장하였다.

참고문헌

『세종실록』
『성종실록』
『고종실록』
『선원속보수정의궤』(규 14137)

집필자

김일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