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正院에서 간행한 1권 1책의 금속활자본 보첩이다. 간행 연도는 1900년(광무 4)이다. 이 책은 중종대왕의 자손록으로 福城君派譜이며, 복성군 이하 12세까지 수록되어 있다. 책의 체재는 범례와 파보로 구성되어 있다. 파보는 6단 횡분식이며, 기재사항은 봉작·관직·명·시호·생몰일·사적·저술·墓地·행장 및 묘비 등의 찬술자 등이다.
복성군 李嵋는 중종의 1남이다. 敬嬪 朴氏에게서 출생하였다. 坡平 尹氏 縣監 贈贊成 仁範의 딸과 혼인하였다. 1517년(중종 12) 6월 28일 瑞城君의 爵號를 복성군으로 고쳤다. 1527년(중종 22) 중종의 사위이며 金安老의 아들인 廷城尉 金禧가, 沈貞과 柳子光 등에게 원한을 품고 이들을 제거하려는 아버지 김안로의 사주를 받아 쥐를 태워 東宮(인종)의 생일에 동궁 뜰에 내걸고 저주했던 灼鼠의 변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모함을 받아 동년 4월 21일 생모 경빈 박씨는 廢하여 庶人이 되고 복성군은 작호가 삭탈되었다. 1533년(중종 28) 경빈 박씨와 함께 賜死되었다. 1541년(중종 36) 11월 9일 동궁의 상소로 인하여 중종이 復爵과 立後를 명하였다. 1871년(고종 8) 3월 16일 貞愍公으로 시호가 추증되었다.
복성군은 윤씨 사이에 崔禮秀와 혼인한 1녀만을 두었다. 선조가 潛邸 時에 繼子가 되었으나, 왕위에 오르자 4남 信城君 李珝를 繼後로 삼았다. 따라서 복성군파보는 신성군 이후의 후손을 중심으로 파보가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