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1년 부묘도감도청의궤(祔廟都監都廳儀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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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형식분류 고서-의궤
· 내용분류 국왕/왕실-의례-의궤
· 사부분류 사부-정서류-전례-부묘(祔廟)
· 시대분류 조선시대
· 주제분류 부묘

기관분류기호

· 청구기호 K2-2230
· 마이크로필름 MF35-000535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편자 부묘도감(祔廟都監)

형태사항

· 크기(cm) 43.6 X 32.5
· 판본 원본(原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冊(162張)
· 판식 彩色圖, 四周雙邊, 半郭 35.5×26.5cm, 烏絲欄, 半葉 12行 24字, 註雙行, 內向二葉花紋魚尾
· 재질 장지(壯紙)
· 표기문자 한자
· 인장 1 (壹品奉使之印)
· 인장 1 (茂朱赤裳山史庫所藏 … 本)
· 인장 1 (李王家圖書之章)

비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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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690년(숙종 16) 仁祖의 둘째 왕비 莊烈王后(1624~1688)의 국상을 마치고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 표제祔廟都監儀軌
· 내제
· 판심제
· 서근제祔廟都監儀軌
【서지사항】
표지서명과 서근제는 祔廟都監儀軌이다. 앞표지에는 ‘熙三十年(1691)’이라는 기록이 있다. 인찰공책지에 내용을 필사하였고 본문 안에는 채색도가 있다. 뒤표지 이면에 ‘大正七年(1918)十月日 改修’라는 개수 기록이 있다. 본문의 지질은 장지로 매우 두껍고 단단하다. 목록이 있는 장에 ‘李王家圖書之章’과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이 날인되어 있으며 본문에 ‘壹品奉使之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국상을 마친 후 후계 왕이 선대왕이나 왕비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의례를 祔廟 의식이라고 한다. 부묘 의식은 五禮 가운데 凶禮에 속하지만 국가에서는 왕이나 왕비를 떠나보낸 오랜 슬픔에서 벗어나고, 왕조의 선왕들과 함께 제향의 대상으로 모셔지는 의례로 흉례에서 吉禮로 전환되는 의식이었다. 국왕이나 국왕의 사후에 세상을 떠난 왕비의 부묘 의식은 3년상을 마치고 이루어졌다. 반면 국왕의 생전에 세상을 떠난 왕비의 위패는 3년상을 마친 후에도 魂殿에 봉안되었다가 국왕이 부묘될 때를 기다려 함께 모셔졌다. 본 의궤의 주인공인 장렬왕후의 부묘 의식은 3년상을 마치고 바로 거행되었다.
인조의 둘째 왕비 장렬왕후 趙氏의 본관은 楊州이며, 한원부원군 趙昌遠의 딸이다. 1638년 12월 선왕비였던 仁烈王后 韓氏에 이어 둘째 왕비로 책봉되었다. 1649년 인조가 승하한 후 효종 연간에는 왕대비로, 현종 연간과 숙종 연간에는 대왕대비로서 왕실의 가장 웃어른 역할을 하였고 여러 차례 존호를 받았다. ‘慈懿’라는 존호가 그 첫째로 통상 자의대비로 불리웠다. 1659년 효종의 국상과 1674년 효종인선왕후의 국상 때에 각각 자의대비가 어떤 복을 입어야 하는가를 두고 두 차례의 예송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1688년 8월 26일 昌慶宮 內班院에서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능호는 徽陵으로 동구릉 안에 있다.
장렬왕후의 부묘의식은 1690년(숙종 16) 10월 10일에 종묘 동향대제와 겸하여 거행하였다. 동년 6월 28일 준비에 착수하여 祔廟都監을 설치하였다. 부묘의식이 마무리될 때까지 睦來善이 도제조로 책임을 맡았다. 부묘의식은 창경궁에 있는 장렬왕후의 혼전인 孝思殿에서 告動駕祭, 신주를 옮긴다는 것을 아뢰는 제사를 올린 후 신주 및 冊寶, 敎命 등을 모시고 나와 종묘 제9실에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는 절차로 진행되었다. 부묘도감 都廳에서는 예행연습[習儀] 및 부묘의식 준비와 관련하여 국왕의 재가를 받고, 각 행정 기관과의 업무 협조를 받는 등 총괄 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다. 도감의 사무는 세 부서에서 나누어 맡았다. 우선 一房에서는 轝輦, 香亭, 床卓, 油家, 木物, 牧丹屛, 寶欌, 冊欌 등을 마련하는 일을 담당했다. 이 중 가마와 책장을 제작 및 수리하는 일이 가장 컸다. 장렬왕후는 생전에 네 차례 존호를 받았다. 통상적인 왕후 부묘의식에는 신주를 싣는 神輦, 神轝, 신연 앞에 서는 향로를 실은 香亭子, 가례 및 시호 관련 보책과 교명을 실은 가마가 필요했다. 장렬왕후의 경우 추가로 존숭 책보를 실을 요여와 채여 8부를 준비했다. 종묘 9실의 책장 역시 자리가 부족하여 새로 제작하였다. 二房에서는 보책 관련 기물 및 상탁, 褥席, 부묘 행렬에 필요한 왕비 儀仗 등의 제작·수리를 담당하였다. 三房에서는 제향에 필요한 祭器 주조를 맡았다.
의궤 권두에 목록이 있다. 서두에 內題가 있고, 부묘의식 및 습의 거행 날짜를 기록한 후 부묘도감의 일을 맡은 관원의 명단인 座目을 수록하였다. 이어 도감의 운영 원칙을 적은 都監事目이 나온다. 啓辭秩에는 1690년(숙종 16) 6월 28일부터 10월 9일까지 도감에서 왕에게 올린 啓辭와 왕의 비답이 수록되어 있다. 다음 禮關秩에는 의식 절차와 관련하여 禮曹와 주고 받은 문서들이 실려 있다. 예관질 말미에 孝思殿告動駕祭儀, 神主詣宗廟儀 등 부묘의식의 구체적인 절차를 기록한 儀註가 있다. 移文來牒秩, 稟目秩, 甘結秩에는 인력 동원이나 물자 조달 등 업무 협조를 위하여 도감과 여러 관서가 주고 받은 문서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 의궤 편찬과 관련된 사항들을 정리해 놓은 儀軌事目이 나온다. 의궤는 御覽用 1건과 議政府, 宗廟署, 春秋館, 禮曹, 江華府, 太白山, 五臺山, 赤裳山城에 분산 보관할 분상용 8건, 총 9건이 제작되었다. 다음 부묘 의식이 모두 끝난 후 도감의 일에 참여한 이들의 명단을 적어 올린 書啓 및 이들에 대한 포상 내역을 기록한 傳敎가 실려 있다. 이상의 도청의궤 다음에는 1방, 2방, 3방 등 各房 의궤가 실려 있다. 각 방별로 담당한 일의 내역과 담당자들의 명단을 적고, 작업의 진행 과정, 소요 물품, 공장의 명단 등을 기록하였다. 3방의궤에는 簠, 簋, 鉶 등 제기의 도설이 있다. 권말에는 신주를 모시고 종묘로 가는 행렬을 그린 28면의 채색 班次圖가 수록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본 의궤는 조선후기 왕후의 祔廟 과정을 자세히 기록해 놓고 있다. 祔廟가 결정되기까지의 논의 및 부묘 의식의 제반 절차, 관련 관서 간의 업무 협조 내용, 의식에 소요된 각종 물품의 종류와 수량 및 조달 과정 등이 매우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조선후기의 정치사, 사상사, 사회사, 경제사, 문화사, 생활사 등 여러 방면의 연구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윤방언, 『朝鮮王朝 宗廟와 祭禮』, 문화재청, 2002
이현진, 『조선후기 종묘 전례 연구』, 일지사, 2008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장서각한국본해제』 史部 9, 2014

집필자

김지영 ․ 규장각한국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