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7년 종묘수리의궤(宗廟修理儀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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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형식분류 고서-의궤
· 내용분류 국왕/왕실-의례-의궤
· 사부분류 사부-정서류-공영(工營)
· 시대분류 조선시대
· 주제분류 건축

기관분류기호

· 청구기호 K2-3587
· 마이크로필름 MF35-002189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편자 종묘수리도감청(宗廟修理都監廳)

형태사항

· 판본 원본(原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冊(38張)
· 판식 四周雙邊, 半郭 31.6 × 22.0cm, 烏絲欄, 半葉 13行 27字, 內向三葉花紋魚尾, 37.7 × 26.5 cm(改裝)
· 재질 닥종이[楮紙]
· 표기문자 한자
· 인장 1 (奉使之印)
· 인장 1 (藏書閣印)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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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637년(인조15)에 병자호란으로 파손되거나 망실된 종묘 및 신주를 수리하고 새로 개조한 사실을 기록한 등록.
· 표제
· 내제
· 판심제
· 서근제
【체제 및 내용】
책의 보관상태가 좋지 않아 앞 뒤부분에 낙장된 부분이 있다. 현재 남아있는 부분은 1637년 2월 30일부터 동년 7월 6일까지의 기록이다. 전체 구성은 啓文, 傳敎, 甘結, 事目 등이 따로 정리되지 않고 시간순으로 되어있다. 작성 기관은 宗廟修理都監이다. 2월 30일 이전에 宗廟修理所가 설립된 것으로 보이며, 2월 30일에는 「宗廟修理所事目」이 마련된다. 그러나 3월 7일에는 宗廟修理所를 宗廟修理都監으로 격을 높여 일을 관장하도록 한다.
본 등록에 실린 내용을 살펴보면 종묘 건물의 수리보다 종묘와 영녕전에 모셔진 神主의 改主에 관한 것이 더 많이 실려있다. 본 등록의 3월 2일자 계문에 의하면 전쟁으로 망실된 신주의 제작을 奉常寺에서 맡겼으나, 다음날 예조에서 造主廳을 宗廟修理所에 합설하였다. 이때 마련한 사목에 의하면 造主廳은 宗廟修理所에 합설하지만 舊例에 의해 郎廳의 監造官은 모두 봉상시 관원으로 차출하며, 造主廳은 宗廟香廳에 배설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에 따라 종묘수리도감에서는 종묘 각 실의 구조와 기물, 신주의 제주 및 개주의 일을 맡아 진행하였다.
초기의 계획은 3월 21일 이전에 종묘의 수리를 끝내고 임시로 時敏堂에 봉안한 신주를 종묘에 봉안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 종묘 각 실의 파손처 수리는 3월 30일에 끝나고, 신주의 봉안은 5월 6일에야 이루어진다. 이렇게 늦어진 것은 전쟁 직후로 인원이나 물력의 조달이 어려웠던 점도 있지만 改主를 둘러싼 논의가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몽고군의 침입으로 江都로 피난할 때 종묘 신주를 모시고 갔다가 강도가 함락될 때 이를 급히 매안하였다. 그러나 몽고군이 이를 파헤쳐 仁順王后의 신주는 망실되고 나머지 신주들도 손상을 입었다. 2월 4일 강도에서 한양으로 돌아온 신주는 임시로 時敏堂에 봉안하고 종묘의 수리를 기다렸다. 처음엔 망실된 仁順王后 신주와 成宗 및 宣祖의 신위만 개조할 예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름 등의 떼나 흠집으로 인해 개주해야 할 신주의 수가 늘어갔다.
3월 16일 예조에서 올린 계문에 의하면 당시 총 40위 신주 중에서 망실된 인순왕후의 신주를 포함해서 새로 개조해야할 것이 13위였다.(懿妃, 定安王后, 元敬王后, 世宗, 昭憲王后, 世祖, 成宗, 文定王后, 仁聖王后, 仁順王后, 宣祖, 仁穆王后, 仁獻王后) 그러나 이러한 신주들을 다 새로 개조할 것인지 가능한 그대로 봉안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다. 3월 25일 계문에는 수리해야할 신주의 수가 29위나 된다고 하였다. 반면 윤 4월 19일에 개주 대상으로 올린 신주는 대폭 줄어든 6위(세종, 문정왕후, 인성왕후, 선조, 인목왕후, 인순왕후)였으나, 너무 적다는 국왕의 주장에 따라 의비, 원경왕후, 의인왕후, 원종, 인헌왕후의 신위가 추가되어 최종적으로 11위를 개조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준비된 栗木으론 6위 밖에 만들 수 없어 5월 4일에 원경왕후, 세종대왕, 문정왕후, 인성왕후, 선조대왕, 인순왕후의 6위를 우선적으로 새로 만들고 나머지는 나중으로 미룬다. 5월 6일 종묘에 전체 신주를 봉안한다.
본 등록은 신주의 개주를 둘러싼 이러한 논의와 당시 신주의 척수 및 모양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신주만이 아니라 종묘와 영녕전 각 실의 파손상태와 수리를 위한 물품도 기록하였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는 각 실의 수리내력을 자세히 적고있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특성 및 가치】
조선시대 종묘 수리에 관한 기록은 등록이나 의궤의 형태로 많이 남아있다. 장서각에 『宗廟改修都監儀軌』(藏 2-3584, 3585, 3586), 『宗廟永寧殿增修都監儀軌』(藏 2-2189, 3588, 3539)가 있으며, 奎章閣에 『宗廟修改謄錄』 (奎12908, 12924), 『宗廟改修都監儀軌』(奎14225), 『宗廟永寧殿增修都監儀軌』(奎14226~奎14228)가 있다. 이러한 종묘 수리 관련 기록들 중 본 등록은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건물이나 의장에 관한 것보다 신주의 개주를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다른 수리등록에서 볼 수 없는 내용을 살필 수 있다. 한편, 『조선조의 의궤』(박병선 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소개된 프랑스 파리 도서관 소장본의 『宗廟修理都監儀軌』(2664)는 시기적으로 본 등록을 기초로 만들어진 의궤인 것으로 보아진다.
본 등록은 병자호란 이후 전쟁의 상처를 씻고 재정비하려는 노력과 신주에 대한 당대인의 생각과 공경의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어 조선후기 국가제례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욱